영화리뷰18 박쥐 (2009, 박찬욱): 뱀파이어 서사에 녹여낸 욕망과 죄책감의 미학 1. 병원 봉사에서 피를 나누는 존재로, 파격적 변신의 서막 영화 [박쥐]는 기존 한국 영화에서 흔히 다루지 않았던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성직자라는 독특한 설정과 결합함으로써 강렬한 첫인상을 남깁니다. 주인공 상현(송강호)은 인류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위험한 백신 실험에 자원하지만, 그 결과 예상치 못한 능력—즉, 뱀파이어가 되어버립니다. 병원 봉사를 하던 성실한 신부에서 피를 갈망하는 초자연적 존재로 탈바꿈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신앙과 인간성의 경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특히 상현이 피를 나누게 되는 여러 장면들은, 단순한 공포나 혐오감을 조성하기보다는 그가 처한 상황의 애틋함과 고뇌를 한층 더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파격적 소재를 다루면.. 2025. 4. 1. 아가씨 (2016, 박찬욱): 관능과 긴장, 금기를 넘나드는 심리 게임 1. 핑거스미스 원작의 재해석, 1930년대 조선으로 옮겨오다 영화 [아가씨]는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하되, 무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김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구현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미 [올드보이]와 [박쥐] 등을 통해 강렬한 영상미와 파격적인 서사를 보여준 바 있지만, [아가씨]에서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기묘하게 뒤섞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층 더 세련되고 섬세한 연출을 선보입니다. 고풍스러운 저택과 하녀복, 기모노와 서양복이 공존하는 무대 설정은 원작의 빅토리아 시대적 색채를 대체하면서도, 일제강점기의 이질적인 풍경을 성공적으로 결합해 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배경 설정에서부터 느껴지는 미묘한 이국적 매력은, 나중에 펼쳐질 치밀한.. 2025. 3. 29. 설국열차 (2013, 봉준호): 차가운 디스토피아, 불타오르는 인간의 욕망 1. 멸망 후, 열차에 갇힌 인류의 생존 방식 지구가 기후 실험의 실패로 얼어붙은 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쉼 없이 달리는 거대한 열차에 몸을 싣게 됩니다. 이 열차의 엔진은 마치 신처럼 영원히 멈추지 않는 존재로 그려지며, 승객들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세상에 발을 디딜 수 없기에 강제로 열차 내부에서의 삶을 이어가야 하죠. 실제로 기차라는 밀폐된 공간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무대가 됩니다. 관객은 눈 덮인 폐허와 운명의 레일 위를 달리는 이 거대한 쇳덩어리를 바라보며, 한없이 차갑고도 서늘한 세계관에 빠져듭니다. 영화는 서사를 풀어가면서 기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빙하로 뒤덮인 지표에서 밀려난 사람.. 2025. 3. 27. 살인의 추억 (2003, 봉준호): 시대를 뒤흔든 미스터리, 잊지 못할 여운 1. 실제 사건에 뿌리내린 충격: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시작부터 강렬한 현실감을 선사합니다. 시골 논밭과 좁은 마을길이라는 한국적 풍경 한가운데서, 잇따른 여성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객은 절로 긴장하게 되죠. 봉준호 감독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만큼, 당시 경찰 수사의 문제점과 시대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일반적인 수사물과 달리, 영화는 비장하게만 흐르지 않고 특유의 유머와 애매모호함을 교묘하게 섞어 넣어 관객을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들죠. “단서가 될 만한 게 없다”는 무력감과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사이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인물들.. 2025. 3. 26. 기생충 (2019, 봉준호): 층간격차와 블랙코미디의 완벽한 조합 1. 기생충의 시작: 가족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영화가 열리면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가족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아무리 문을 열어도 시원한 바람 대신 길고양이 냄새와 술 취한 사람의 소란만 들려오는 이 공간은, 가족들이 버티고 있는 사회의 가장 낮은 단면을 상징합니다.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친구로부터 부잣집 영어 과외 자리를 제안받고, 그 순간부터 가족에게는 어쩌면 인생을 뒤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작은 희망이 피어오릅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는 극중 인물들의 처지를 웃프게 그려내면서도, 관객에게는 씁쓸함을 동시에 안깁니다. 전반부에는 이 가족이 얼마나 ‘새로운 세계’에 목말라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이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 어떤 절차와 거짓말을 감수해야 하는지가 절묘하게 보여집니다... 2025. 3. 25. 괴물 (2006, 봉준호): 웃음 속에 숨겨진 냉혹한 사회 비판 1. 첫 등장부터 강렬한 한강 괴수의 임팩트 2006년,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인데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은 한강 변에 나타난 괴생명체의 압도적 위용에 압도됩니다. 익숙한 도시 풍경 한가운데에 등장한 그 거대한 괴물은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며, 기존 괴수 영화와 달리 가족 중심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첫 장면에서 가족들이 평온하게 일상을 누리다가, 갑작스럽게 괴물에게 딸을 빼앗기는 장면은 보는 이를 충격에 빠뜨리죠. 무엇보다 화면에 잡히는 한강과 주변 환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기에, 이 비일상적인 상황이 더욱 실감나고 긴장감을 배가시킵니다. 이렇듯 [괴물]은 초반부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고정관념을.. 2025. 3. 2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