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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2019, 봉준호): 층간격차와 블랙코미디의 완벽한 조합

by 주름만 생겼냐, 서사도 늘었지 2025. 3. 25.

1. 기생충의 시작: 가족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영화가 열리면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가족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아무리 문을 열어도 시원한 바람 대신 길고양이 냄새와 술 취한 사람의 소란만 들려오는 이 공간은, 가족들이 버티고 있는 사회의 가장 낮은 단면을 상징합니다.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친구로부터 부잣집 영어 과외 자리를 제안받고, 그 순간부터 가족에게는 어쩌면 인생을 뒤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작은 희망이 피어오릅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는 극중 인물들의 처지를 웃프게 그려내면서도, 관객에게는 씁쓸함을 동시에 안깁니다. 전반부에는 이 가족이 얼마나 새로운 세계에 목말라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이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 어떤 절차와 거짓말을 감수해야 하는지가 절묘하게 보여집니다.

  아슬아슬한 면접과 신분 세탁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순식간에 기택 가족의 편을 들게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선악 구도가 아닌 생존 본능과 욕망의 문제로 다가와, 마치 내가 기우나 기정(박소담)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이처럼 봉준호 감독은 첫 장면부터 등장인물들의 절박한 상황을 익살스러운 터치로 보여주며,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와는 달리 관객에게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묘한 역설을 선사합니다.

 


 

2. 하나의 집, 두 개의 계층: 봉준호식 사회 풍자

  가족이 안주인이 운영하는 저택에 하나둘씩 스며드는 과정은 흡사 미션 게임 같습니다. 처음엔 과외 선생님, 다음엔 미술 치료사, 그 뒤엔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로까지 위장 취업에 성공한 이들 앞에는 별다른 방해물이 없어 보이죠. 그런데 이 장면들이 은근히 웃긴 동시에 섬뜩한 이유는, 감독이 이라는 공간을 은유의 무대로 삼아 계급의 수직적 관계를 선명하게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부잣집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순간, 높은 담장과 야외 계단이 시야를 압도하며 상류층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거실과 부엌, 그리고 지하 공간의 대조적인 레이아웃은 관객에게 계층 간의 격차가 얼마나 단단히 박혀 있는지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결코 무겁기만 한 사회비판물로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택 가족이 능청맞게 주변 인물들을 속이고, 그 상황을 또 능숙하게 즐기는 모습이 기묘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곳곳에 숨은 개그 코드와 예상치 못한 반전들은 이 영화가 단순한 계급 갈등 드라마가 아니라, 봉준호의 대표 장르인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치들이기도 합니다.


3. 또 다른 엔딩, 끝나지 않은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마치 숨바꼭질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며, 관객을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이끌어갑니다. 쏟아지는 폭우와 함께 반지하 방이 물에 잠기는 장면은 강렬한 상징으로 남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때 부잣집 가족은 캠핑 대신 홈 캠핑을 즐기면서 우아한 파티를 준비하죠. 누군가에게는 집이 물바다가 되어 생존이 위협받는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사스럽게 자연의 소리를 즐기는 휴식이 되는 겁니다. 이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같은 시간, 다른 풍경의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가 꿈꾸는 미래, 그리고 관객이 느끼는 허탈감은 결코 쉽사리 해소되지 않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그 이야기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우리 일상 속 여러 격차와 장벽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하며 전 세계가 주목했던 이 작품은, 단순히 한국 영화계의 위상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갈수록 격해지는 양극화와 끊이지 않는 사회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웃음 속에 배어 있는 날카로운 비판과, 그것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담대함이야말로 기생충이라는 걸작이 지닌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