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추격자 (2008, 나홍진): 범죄 스릴러의 새 지평을 연 충격적 데뷔

by 주름만 생겼냐, 서사도 늘었지 2025. 4. 4.

1. 묵직한 전개와 리얼리티, 한국형 누아르의 시작  

  영화 [추격자]는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부터 압도적인 몰입감과 긴장감을 선사하며 범죄 스릴러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기본 설정은 간단합니다. 전직 형사였던 엄중호(김윤석)가 현재는 콜걸을 관리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연이어 실종되는 여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단순 실종 사건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기괴한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감독은 초반부터 비 내리는 도심의 음습한 골목길과 막다른 지형을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한국형 누아르의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카메라는 흔들리는 손떨림이나 좁고 폐쇄적인 구도로, 추적과 긴박함을 더욱 리얼하게 전달합니다. 이처럼 [추격자]는 사실주의적인 범죄 스릴러 요소와 한국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결합해, 동시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특히 실화를 연상케 하는 현실감 넘치는 전개가, 극 중 인물들이 겪는 공포와 절망을 고스란히 체감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2.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인간 본성의 충돌  

  영화의 핵심 축은 ‘쫓는 자’ 엄중호와 ‘쫓기는 자’ 지영민(하정우) 사이의 대립 구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전직 형사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엄중호는 단순히 돈만 벌 목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라, 부패와 회의로 물든 경찰 조직을 떠났음에도 내면 어딘가에는 정의감이 남아 있는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그에게 콜걸 실종 사건은 처음엔 단순 비즈니스적 손해를 막기 위한 수사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책임감과 분노를 동반하게 됩니다. 반면 살인마 지영민은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 태도를 지녔지만, 냉혹하고 잔인한 성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서 관객에게 극도의 불쾌감과 공포를 안깁니다. 이렇듯 쫓고 쫓기는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폭력성과 인간성의 어두운 면모는, 범죄 스릴러 장르가 가진 스펙터클을 넘어 ‘사람이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집니다. 특히 좁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추격씬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잔혹한 상황들은 보는 이를 숨막히게 만들고,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사합니다.

추격자-스틸컷
[추격자]



3. 반전과 분노,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  

  [추격자]가 단순한 범죄 스릴러에서 그치지 않고 특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찰 내부의 부조리와 무능, 그리고 생명보다 절차와 윗선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관료주의적 태도 등은, 극 중 긴박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실제로 엄중호가 범인을 잡을 결정적 단서를 잡아도, 행정적 절차나 윗선의 지시 때문에 행동이 지연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장면들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부정적 시스템을 꼬집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피해 여성들이 콜걸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 부족과 경시가 어떤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무겁게 일깨웁니다. 영화 막바지에는 인물들의 처절한 사투와 함께 강렬한 감정 폭발이 이어지는데, 이는 관객에게 “만약 시스템이 조금만 더 제 역할을 했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씁쓸한 질문을 남깁니다. 결국 [추격자]는 나홍진 감독이 보여준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장르 영화이자, 리얼리티 속에 녹아 있는 사회비판적 시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한국 범죄 스릴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