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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연상호, 2016): 불편한 공포, 그리고 남겨진 희망

by 주름만 생겼냐, 서사도 늘었지 2025. 4. 9.

1.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 이미 시작된 종말, 숨막히는 초반 전개  

   영화 [부산행]은 평범한 출근 풍경으로 시작되지만, 이내 버려진 도로 위에서 수상쩍은 사고가 벌어지면서 불길한 징후를 암시합니다. 주인공 석우(공유)와 어린 딸 수안(김수안)은 생일을 맞아 부산으로 떠나는 KTX에 오르지만, 열차 출발과 동시에 어긋난 재앙이 시작되죠. 누군가에게 물린 듯한 승객 한 명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순식간에 ‘좀비’로 변해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염을 퍼뜨립니다. 좁고 폐쇄된 객실 안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확산되는 감염 사태는 긴장감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관객은 열차와 함께 미지의 지옥으로 달려가는 기묘한 공포를 체감하게 됩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 과정에서 사운드와 카메라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제어해, 오히려 승객들이 느낄 절망과 혼란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기차 문 하나가 닫히거나,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작은 디테일조차도 생사가 갈릴 만한 위협 요소가 되면서, 초반부터 영화는 숨 돌릴 틈 없는 서스펜스를 완성하죠.


2. 좀비 vs 인간이 아닌 인간 vs 인간, 극한 이기심과 연대의 충돌  

  이어지는 전개에서 [부산행]의 진짜 공포는 좀비 자체보다, 극도로 불안정해진 환경 속 인간들의 이기심과 비정함에서 비롯됩니다. 석우와 함께 협력하는 임신부 성경(정유미), 건장한 남성 상화(마동석) 부부, 고교 야구부 학생들 등이 한데 뭉쳐 좀비 무리를 피해 객실을 옮겨가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인간 내면의 추악함이 서서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특히 몇몇 승객들이 “살기 위해” 동료들을 객실 밖으로 밀어내고, 상황 판단보다는 이기적 감정에 휩쓸려 공포 분위기를 부추기는 모습은 생각보다 더 큰 절망감을 안겨줍니다. 연상호 감독은 좀비영화라는 장르적 외피 안에, 이처럼 인간 군상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갈등을 밀도 높게 담아냄으로써 오락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잡아냅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몸을 희생해 타인을 살리는 인물들,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헌신 등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휴머니즘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묵직한 감동과 되돌아볼 질문을 안겨줍니다.


3. 감동적 결말, ‘좀비영화’ 이상의 휴머니즘 메시지  

  종반부로 갈수록 좀비 감염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목적지인 부산이 과연 안전한 곳인지도 불투명해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생존 여부”로 귀결되지 않고, 인물들이 남기는 마지막 선택과 희생을 통해 한층 더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주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작은 용기와 연대의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배제하는 경쟁 논리와 대조를 이루며 극적 대비를 형성합니다. 결국 [부산행]은 재난 블록버스터의 공포감만을 파고드는 대신, 공포와 대조되는 인간다움과 희망에 집중해 ‘좀비영화’ 이상의 의미를 획득합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만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물론,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되어 해외 관객과 평단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감염사태가 던지는 극단적 공포와, 그런 공포를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선택을 통해, 연상호 감독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이기주의와 함께 그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희망의 가능성을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