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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2018, 이창동): 청춘의 공허와 불안을 태우는 은유의 불길

by 주름만 생겼냐, 서사도 늘었지 2025. 4. 9.

1.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에서 시작된 미스터리, 이창동식 재해석  

  영화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창동 감독 특유의 깊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재탄생한 작품입니다. 원작이 지닌 신비로운 분위기와 ‘태우기’라는 상징적 행동을 바탕으로, 이창동은 한국적 현실을 담은 서사를 풀어냈습니다. 주인공 종수(유아인)가 오랜만에 만난 해미(전종서)와, 그녀의 친구이자 정체가 모호한 인물 벤(스티븐 연) 사이에서 느끼는 미묘한 긴장감은, 처음에는 하릴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다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의심과 불안으로 치닫습니다. 무라카미 원작에서는 ‘헛간을 태운다’는 상징이 인물들의 내면 공허를 암시했다면, [버닝]에서는 그 행위가 한국 청년들의 답답한 삶과 만나면서 더욱 극적인 은유로 발화하게 됩니다. 곳곳에 배치된 작은 단서와 중의적인 대사들은 영화가 선명한 답을 주기보다 관객들에게 상상과 해석의 자유를 열어두려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는 곧 모호함을 통해 더 큰 불안을 부추기는 이창동 감독의 연출 의도를 드러내며, 관객들은 종수가 마주치는 의문스러운 상황들을 함께 체험하게 됩니다.  


2. 조용히 타오르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불안, 세 인물의 엇갈린 시선  

  영화 속에서 종수, 해미, 벤은 각각 다른 이유로 결핍과 욕망을 품은 채 살아갑니다. 종수는 특별한 목표 없이 농가를 돌보며, 작가의 꿈을 품고도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상태입니다. 해미는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결핍감을 안고 있습니다. 반면 벤은 풍족한 환경과 여유를 갖춘 듯 보이나, 그 미소 뒤에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오히려 섬뜩한 인상을 줍니다. 이 세 인물이 얽히면서, 청춘의 불안정한 감정이 격돌하고 관객은 점차 불편한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벤이 예사롭지 않은 취미를 고백하는 장면에서부터, 종수의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증폭되고 해미의 존재 또한 흔적을 감춥니다. 이때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로 흘러가는 대신, 불명확한 사건 속에서 청춘들이 지닌 불안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고요한 화면과 느긋한 서사의 흐름 속에서, 차갑게 타오르는 분노와 절망이 찾아온다는 점이 이창동 감독 특유의 감성적 연출을 잘 보여줍니다.


3. 끝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리고 시대를 향한 메시지  

  [버닝]은 결말마저도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고 막을 내림으로써,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을 유도합니다. 벤의 실체가 무엇인지, 해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종수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이 모든 질문이 불투명한 채로 남죠. 이는 종수의 분노와 불안이 결국 청년 세대 전체가 느끼는 막막함과도 닮아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자신이 일찍이 [초록물고기], [밀양] 등을 통해 일관되게 그려왔던 ‘개인의 상실감과 사회의 부조리’라는 테마를 [버닝]에서 한층 더 세련된 방식으로 펼쳐 보입니다. 이 영화가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고,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곁들이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도 쉽사리 묵직한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과 의문 속에 답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닝]은 ‘태워버리고 싶은 어떤 욕망’을 통해 침잠된 사회를 선명하게 비추며, 이창동 감독이 지닌 통찰력과 서사의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해냅니다.